[사군자의 세계] 맑고 향기로운 사대부의 기개
중국 북송 이래 군자의 이상 표현…봄꽃이 무르익을 대로 익어 세상을 환하게 하고 신록은 푸르러만 가는 좋은 계절 5월이다. 사군자. 화초는 화초이고 사람은 사람이지만, 매화(梅)ㆍ난초(蘭)ㆍ국화(菊)ㆍ대나무(竹)를 소재로 그리는 그림을 사군자라고 한다. 이들은 추위와 같은 시련을 견디며 향기가 맑고 그윽한 꽃을 피우고 푸르름을 잃지 않는 기개를 자랑하여 군자의 기상을 드러낸다.
군자란,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선한 행동에 힘쓰면서 게으르지 않는 사람이라고 「예기」는 소개한다. 세상살이에 흔들리지 않고 절개를 지키며 고매한 인품으로 주위를 맑고 향기롭게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문인 사대부가 형성된 북송시대 이래로 사대부들은 그들의 이상상인 군자의 상징으로 이들 사군자를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상징성은 일찍부터 문인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 일찍부터 문인들의 사랑받아와 당나라의 시인 백락천(백거이)은 「양죽기」에서 대나무의 견고함과 한쪽에 기울지 않음과 겸허함과 절개를 칭송하였다. 「시경의 위풍편 첫 수에는 아름답고 무성하고 청청한 푸른 대나무를, 깎고 다듬고 쪼고 간 빛나는 군자라고 노래하며, 늙어서도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위무공의 품성을 대나무에 비유하였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이자 충신이었던 굴원은 이름난 「이소」에서 난초를 심었다고 읊었고, 그래서 그의 고매한 인품과 난초를 연관시켜 충성심과 절개의 상징이 되었다. 「주역」 계사에는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을 수 있고, 마음을 같이 한 말은 그 향기가 난과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마음을 터놓는 사귐을 말하는 「금란지교」가 생겨났다. 육조시대의 전원시인 도연명(도잠)은 「귀거래사」에서 『뜰의 길은 이미 황폐해졌는데 소나무와 국화는 여전하구나』 하더니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캔다』고 하고 『가을 국화에 고운 모습이 있다』고 읊어 국화와 가장 인연 깊은 시인이 되었다. 박학하고 시문에 뛰어났던 북송의 시인 임화정(임포)이 서호의 고산에 초당을 지어 20년간 세상에 나오지 않고, 매화를 심어 아내로 삼고 학을 길러 자식으로 삼아 독신으로 은거생활을 하여 매처학자라고 불린 이후부터 매화는 문인들 사이에 애호되었다. 이처럼 사군자는 문인들과 밀접한 연관을 가졌다. 그래서 그 기법은 자연히 글씨를 쓰는 필묵법을 바탕으로 이를 좀더 형상화하는 수묵화법으로 그리는 것이 제격이었다. 북송에서 문동과 소식은 묵죽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고려의 김부식은 묵죽을, 정지상은 묵매를 그리기 시작했다. 남송인으로 원 지배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정사초는 뿌리를 드러낸 난초를 그려 나라 잃은 슬픔을 드러냈다. 조맹견은 소나무(松)와 대나무와 매화를 추운 겨울의 세 벗(歲寒三友), 곧 역경에도 지조를 변치 않는 세 가지 맑은 것(三淸)이라 꼽아 그림으로 그렸다. ◆ 가슴 속에 5천권의 책을 담아야 우리 나라의 기품 있는 사군자 수작들은 조선 선조대 이후부터 남아 있다. 묵죽의 제일인자 탄은 이정은 사생미와 이상미를 적절하게 조화시킨 운치있는 묵죽 수작들을 남겼고 유덕장 강세황 신위 등이 뒤를 이었다. 난초는 문자의 향기(文字香)와 책의 기운(書卷氣)이 없으면 난초를 그릴 수 없다던 추사 김정희를 으뜸으로 흥선대원군과 민영익 등이 뒤를 잇는다. 묵매는 조지운, 묵국은 심사정이 빼어나다. 가슴 속에 5000권의 책을 담아 교양을 쌓아야만 책의 향기가 배어난다. 모름지기 사군자는 군자가 그려야 제 향기를 낸다. 군자다운 군자를 찾기 어려운 요즘, 진정한 사군자를 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금이라도 군자향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병삼 숙명여대 한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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